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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1]정치의 시대

1. 정치 참여는 필수
2. 권력의 싸이클과 권경유착
3. 테크놀로지 시대의 정치
김은정 기자

어진 정치로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요순시대(堯舜時代)’는 고서 속에 박제된 한 편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일하고 수확하고 쉬는 삶의 대소사가 자연과 맞물려 평탄하게 돌아가므로 임금이 누구인지 관심조차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묘사는 간혹 유토피아와 비교되기도 한다. 요임금에서 순임금으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바뀌는 일이 혈연 세습이 아닌 ‘선양(禪讓)’으로 유혈 사태 없이 평화롭게 이뤄졌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드문 일이다.
긍휼과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기독교의 유일 경전인 성경에서조차 왕정 기록은 권모술수와 암투로 점철돼 있음을 고려한다면 선양은 더욱 현실감이 없다.
현실 정치는 하루가 멀다하고 비리와 의혹을 쏟아내며 탄핵을 휘두른다. 동서양, 선/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 등의 인위적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정치판은 복잡하다.
미연방 의회는 지금 HR1 법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국민을 위한 법안(For the People Act)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대대적인 선거법 개혁안이다.
골자는 당일 유권자 등록 및 투표소에서 유권자 정보 수정 가능, 사전 투표 최소 15일간, 우편투표/전자투표 확대, 유권자 자동 등록, 6:1 선거 자금 매칭, 대통령/부통령 후보의 10년간 세금 보고 자료 제출 등이다.
여기에서 유권자 자동 등록이란 교통국 등 어느 정부 부처에든 유권자 등록에 필요한 정보(이름, 생년월일, 주소지 등)를 제출할 경우 18세 이상을 자동으로 유권자로 등록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6:1 선거 자금 매칭은 소액 지지자들의 기부금을 정부가 새로 만들어 운용하는 기금에서 매칭해준다는 것이다. 만약 A가 B후보에게 200달러를 기부했다면 B후보는 정부로부터 1200달러의 선거 자금을 지원받는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예산은 위법을 저지른 개인 및 은행/기업이 내는 패널티 일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이 법안은 하워드카운티가 포함된 3지역구를 대표하는 존 사베인스 연방 하원의원이 2019년 처음 소개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 236명 전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그때나 지금(2021년 3월 5일 다시 소개)이나 연방 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법안을 무리 없이 통과시켰다. 찬반 집계는 2019년엔 234:193, 2021년엔 220:210이다.
민주당이 전원 찬성인데 반해 공화당은 극구 반대를 부르짖는다. 유권자 자동 등록이 사망자, 이주자, 불법체류자 등에게 무작위로 투표권을 부여하는 오류를 일으킬 것이며, 정부가 후보들의 선거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세금 오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작년 대선 시 우편투표 용지 오배달, 사망자에게 지급된 코로나 구제비 등을 생각하면 주민등록 제도가 없는 미국의 현실에선 타당한 우려라 할 수 있다.
한국계 초선 의원인 미쉘 박 스틸 하원의원도 표결 전 의견 발표에서 반대를 표명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3일 ‘데일리 시그널(보수 성향 헤리티지 재단 간행물)’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HR1)법안이 선거 사기 가능성을 높이고 적법한 유권자들의 표를 희석할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선거철에 주로 등장하는 ‘국민을 위한’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믿는다.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누가 ‘국민’이냐는 법적 정의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 불법체류자는 자국민이 아니다. 국민 중에서도 미성년자는 투표권이 없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투표권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컴퓨터도 없고 차량도 없고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꿰고 있을 여유도 없는 극빈층의 정치 참여는 어떻게 유도하는가? 국민이지만 위법의 경력이 있는 범법자에게 투표권을 인정하는가(현재 많은 주가 복역 중인 수감자에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어가 제2외국어인 이민자들을 위한 도움 및 편의는 어디까지 제공돼야 하는가 등 이슈는 차고 넘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정치는 와습(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전유물이었다. 표현 그대로 백인, 영국계, 개신교의 배경을 가진 남성들이 정치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속한 것은 자연스럽게도 공화당이다. 공화당은 여전히 리퍼블리칸(Republican)이라는 공식 명칭 외 GOP라는 별칭으로도 언급된다. GOP는 Grand Old Party의 알파벳 첫자 모음이다. ‘웅장하고 유서 깊은 정당’ 정도의 느낌이다.
공화당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당이 꺼내 든 것은 ‘와습’이 아닌 모든 ‘소외층 대변’이라는 카드다. 이 카드는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흑인, 여성, 젊은이, 이민자 표를 끌어내기 위해 온갖 ‘차별설’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물론 놀라울 만큼 많은 것들이 민주당의 소외계층 감싸기를 통해 이뤄진 것은 바꿀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정치 구도가 아직도 그렇게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가에 있어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기득권, 민주당-소외층의 이분법적 성향은 무너진 지 오래다.
지미 리 메릴랜드 특수부장관은 현대 정치를 두고 ‘그린당’ 대결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여기에서의 그린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이 아니라 지폐 색깔 그린을 의미한다.
정치 비리를 파헤치려면 돈줄을 쫓으라(Follow the Money)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공화당을 구태의연한 보수집단이라고 폄하하기엔 민주당 또한 권력형 비리와 정경유착의 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십보 백보다.
그래서 누구나, 모두가 정치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만인 정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