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정치의 시대 3]테크놀로지 시대의 정치
김은정 기자
인터넷의 보급으로 확산된 소셜네트워크(SNS, Social Network Service)는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를 지향하는 인터넷 속도와 맞물려 속속 등장한 기기는 갖고 다니기 편한 스마트폰과 얇고 가벼워진 랩탑/크롬북을 비롯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피커, 생활 소품 등이다.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류가 얻은 것은 정보의 공유 또는 접근성이 쉽고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 또한 존재한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한 짝인 것처럼 속도의 이면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의 미덕은 성패의 여부는 물론 성공의 질 또한 상기시킨다. 빨리 가다 보면 미처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테크놀로지의 편의에 빠져 대중이 놓치고 있는 것은 세상살이의 기본이 되는 사회성이다. 사회성이 중요한 이유는 함께 모여 서로에게서 배우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집단 이성과 지식, 연대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유대감과 배움의 전달 과정 구축 등에 있어 ‘함께하는 법을 아는 것’이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의 결여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경험에 대한 기회를 박탈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유튜브로 배우는 세대는 자기중심적이기 쉽고 문제 해결 능력에 있어 창의적이기 힘들다. 동영상이 마음에 안 들면 채널을 바꾸면 된다.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만큼 보면 된다.
옛날처럼 가족이 둘러앉아 TV 리모콘 쟁탈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각자 자신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더구나 유튜브 알고리즘(실행 절차)은 시선을 묶어 놓기 위해 저 스스로 알아서 지금 플레이되고 있는 동영상과 비슷한 내용을 포함한 다음 동영상을 줄줄이 틀어준다. 유튜브를 보고 있다 보면 서너 시간 때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평가하지만 별로 창의적이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개인은 정치꾼에겐 앉아있는 오리(Sitting Duck)와 다를 바 없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타깃이다.
소셜네트워크의 파워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이용한 정치인들이 쓸어간 것은 당연히 젊은 유권자들과 소외 계층의 표다. 젊거나 소수계이거나 혹은 둘 다인 그룹의 정치 참여는 환영받아 마땅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차세대 육성은 분야를 막론하고 그 계통의 단체나 커뮤니티의 존속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불변의 진리는 젊음과 노련함은 비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2020년 볼티모어 시장 선거는 예상을 뒤엎은 이변으로 꼽힌다. 10여 년 전 임기 중 횡령 혐의로 사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장직에 출마했을 만큼 정치적 경력이나 선호도 면에서 앞서 있던 실라 딕슨 후보를 제치고 정치 신예 브랜든 스캇이 당선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브랜든 스캇은 선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선두 다툼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순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예비 선거가 치러졌던 6월 초 볼티모어는 조지 플로이드 시위가 한창이었다. 선두를 달리던 시장 후보들이 몸을 사릴 때 브랜든 스캇은 거리로 나가 시위에 참여했고, 12월 시청에서 열린 시장 취임식의 주인공이 됐다.
36살의 신임 시장은 현재 지지 세력의 취약함에서 오는 곤란을 온몸으로 겪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젊기 때문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고, 그 후에 벌어지는 일은 능력 또는 무능력으로 평가될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라는 무기는 정치인에게도, 유권자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자고 나니 ‘신데렐라’가 돼 있더라는 상황은 한순간에 다시 재투성이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내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스마트폰이 동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밀당’ 협상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가시밭이다. 웬만한 배짱과 내공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배짱이 민심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되기 위해선 진정성과 상황을 꿰뚫는 통찰력이 밑받침 돼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의 키 포인트인 속도와 전파력은 검증 절차의 약화를 초래한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만나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상호작용(Interaction)이다. 영상이나 홍보물은 편집이 가능하지만 라이브는 날 것 그대로를 접할 수 있다. 좀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을 모아 토론회를 여는 것은 면접심사다. 내 권익을 대변할 대표를 뽑는다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다각도로 검증해보지 않는 것은 고무신 한 켤레 받고 찍어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런 안일함으로 대처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끝없이 복잡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정치적인 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것은 일견 타당한 변명이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 학군이 재구획 되는 것, 개스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 이자율이 변동하는 것, 계란과 우윳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 마스크를 쓰거나 벗는 것, 백신을 맞는 시기, 대입 전형이 바뀌는 것, 구글이 내 삶의 동선을 꿰고 있어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 등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정치 활동의 영향이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으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제도적 차별, 사회 구조적 불평등, 개천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적 횡포에 맞서려면 부지런히 뭉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과 정치인은 계란과 바위 같을 수 있지만, 바위도 낙수에 뚫린다는 것을 잊지 말자.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패를 쥔 쪽은 국민이다. 선거철에만 대우받지 말고 대리자를 움직이는 두뇌가 되자.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성의는 태만이며 징계 사유다.
김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