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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폭동은 한-흑간 ‘작은 전쟁’이었다

30주년 맞은 미주이민사 최대 비극
박세용 기자
1903년 시작된 한인 이민사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된 ‘4.29 LA폭동’이 30주년을 맞았다.

1992년 당시 캘리포니아 LA 경찰청경찰관들이 운전사였던 로드니 킹을 무차별 구타한 사건이 무죄로 판결나면서 흑인들의 분노는 폭동으로 번졌다. LA시내에서 6일간 진행된 폭동으로 유혈, 방화가 이어져 58명 사망, 수천여명 부상 및 1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 중 한인들의 피해액만 3억 5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폭동 발생 1년 전인 1991년 3월16일, LA에서 리커 스토어를 운영하던 한인 두순자 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가 오렌지 쥬스를 훔친 것으로 오해해 시작된 몸싸움 중에 소녀를 총으로 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요즘 같으면 비무장 흑인 소녀에 대한 총기 살인이라고 대서특필 됐을 이 사건에, 재판부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흑인사회는 “개를 죽여도 감옥 가는 미국에서, 흑인 소녀를 살해한 한국 여자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고 거칠게 분노했다.

사건발생 1년 후 촉발된 4.29 폭동은 LA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흑인들은 한인 업소들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한인들을 골라서 폭행했다. 백인들에 대한 분노가 한인 들에게 집중됐던 이유는, 쌓일만큼 쌓였던 한흑갈등이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인들도 그런 흑인들의 공격에 결연히 맞섰다. 인근 백인 부촌에만 집중된 경찰력에 절망한 한인들은 진지를 구축하고 총기로 무장해 흑인들의 폭력에 대응했다. 5월1일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이 출동하며 폭동은 서서히 진압됐으나, 피해는 참담했다. 한인 한 명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온전히 남은 상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LA 한인 모두가 피해자였다.


워싱턴 한인사회를 비롯한 전국의 한인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미국 한인 이민사는 4.29 폭동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고, 한흑갈등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노력도 활발히 진행됐다.

30년이 지난 지금, 제2의 로드니 킹 사태로 불리는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발생한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물결은 미국 전역을 덮었다. 그때와 달리 한인사회는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그들과 한 목소리로 미국 내 소수계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래서 비극을 방지할 수 있기도 하다. 한흑갈등으로 인한 또다른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역량 강화와 함께, 미국민으로서의 사회적 연대 필요성 등의 자구책이 끊임없이 연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