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30주년을 맞아 화합과 치유의 벽화가 그려졌다. 한인 업주와 흑인 직원 사이의 수십년 우정이 밑그림이 됐다.
잉글우드 지역 맨체스터 불러바드 인근에 있는 ‘S&H 리커스토어’ 벽면에는 미소 띤 얼굴들이 색을 입었다. 벽화 속 주인공들은 리커스토어 업 주인 서성호·경옥 부부와 흑인 직원 릭. 서씨 부부는 지난 1987년부터 30년 넘게 이 업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가족같은 직원 릭과의 만남은 LA폭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폭동 이후 갱단원이었던 릭을 서씨 부부가 직원으로 채용한 것. 서씨 부부와 릭의 만남은 업주와 직원 관계로 시작됐지만 믿음으로 이어진 수십년의 시간은 인종을 초월한 우정으로 변화시켰다. 릭은 다리부상으로 입원 중이라고 한다.
서성호씨는 “그동안 이곳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며 별일 다 겪었다. 하지만 흑인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하늘로 가면 우리는 원래 다 평등한 존재 아닌가.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씨는 폭동 당시 업소를 지키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는 동네 주민들에게 ‘파파(papa)’로 불린다. 그만큼 고객들과 친근하다. 물론 두 사람의 우정도 지역 사회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S&H 리커 스토어는 진정한 ‘동네 가게’로 불린다.
이번 벽화 제작은 LA카운티 검사로 일하고 있는 장남 폴 서씨가 큰 역할을 했다. 서 검사는 LA폭동 30주년을 앞두고 업소의 휑한 벽면을 아버지와 릭의 우정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폭동의 아픔을 씻고 양 커뮤니티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소망에서다.
서 검사는 “주변에 ‘소파이(Sofi) 스타디움’이 세워진 이후 개발붐이 일면서 건물 매각 요청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절대 팔지 않겠다고 하셨다”며 “세입자나 직원들의 생계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고 말했다.
벽화 제작은 한인민주당협회(KADC) 주최로 홀리 미첼 LA카운티 수퍼바이저, LA 한인회 등이 도왔다. 한인 2세인 애니 홍, 줄리아 전 아티스트가 직접 벽화를 그렸다. 그리고 LA카운티 예술 기금(2만 달러)을 지원받아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LA폭동 30주년을 맞아 한인 업주와 흑인 직원 사이의 수십 년 된 우정 이야기가 벽화로 제작됐다. 벽화 제작이 한창인 지난 27일 잉글우드 지역 S&H리커스토어 주차장 벽면에 그려진 서성호경옥 부부와 흑인 직원 릭의 모습을 동네 주민들이 감상하 고 있다. 김상진 기자
벽화에는 서씨 부부, 릭의 얼굴과 함께 ‘Roots(뿌리)’ ‘Hold(유지)’ ‘Stronger(강력한)’ ‘Entwined(얽혀있는)’ ‘Together(함께)’ 등 다섯 단어가 함께 새겨졌다. 애니 홍 작가는 “이 단어들은 한인 사회와 흑인 사회의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마음과 시선을 넓히면 두 커뮤니티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