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 한인, 노벨상 근접
심장 연구 찰스 홍 박사
노벨상 수상 전단계인
AAAS 펠로우로 선임
김은정 기자
메릴랜드대 의과대학 심장학 연구 디렉터이자 심혈관학 공동의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찰스 홍 의과학자(사진)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펠로우로 선임됐다.
AAAS 펠로우로 선임된 인재가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선례가 많은 탓에 학계에서는 AAAS 펠로우 선임이 해당 분야의 업적에 대한 명실상부한 검증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AAAS는 과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발행하는 곳이다. 또한 사이언스 면역학, 사이언스 로보틱스 등 다수의 자매지를 통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며 전 세계 과학, 의학, 공학계를 이끌고 있다.
메릴랜드대 의과대학은 2월 초 본 대학 소속 3명의 박사가 2021년 AAAS 펠로우로 선임된 것을 자세하게 홍보하며 축하했다. 펠로우 선임 축하식은 지난 13일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홍 박사는 MIT에서 생물학을, 예일에서 생물학 의과학자(MD. PhD)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에서 휄로우(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쉼 없는 연구와 노력
AAAS 펠로우로 선임되면서 조명받은 업적은 심장혈관 세포가 발달하면서 정맥과 동맥으로 구분되는 과정에 있어 ‘PI3K’의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닥터 홍은 “항상 하나의 세포가 신체 각 기관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로 발달한다는 것이 늘 경이로웠고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세포 분열과 발달에 대한 궁금증이 인체의 기본적인 형성 과정 자체에 대한 연구라면, 2008년 세계 최초로 발견한 BMP 경로에 대한 약리학적 억제제의 발견은 약물 복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연구재단의 심장질환 연구를 위한 그랜트를 수혜받은 바 있고, 2015년에는 라 졸라 제약회사와 연구 계약을 맺고 심장 건강과 치료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외 다수의 연구 업적이 있고, 조만간 계속 새로운 발견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에서도 홍 박사는 “운이 좋았다. 훌륭한 멘토를 만났다”라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선임 소감에서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도록 격려한 멘토와 함께 연구한 멘티 및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함께 새로운 치료법 발견 및 생물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의 성취와 집단적 발전
홍 박사는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오를 수 있는 단계에는 한계가 있다. 좋은 멘토를 만나 연구의 방향을 유지하며 인내심을 갖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의 또는 제 몫을 하는 연구자가 될 때까지 최소한 16년 이상의 과정을 공부해야 하고, 경쟁이 치열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멘토의 역할이 다음 과정으로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의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후세를 위해 “공부를 할 때 교수에게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 연구를 어떻게 한 것이냐’라며 질문하고 상담하라. 대부분의 교수는 먼저 다가오는 학생을 반가워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학 또는 의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미지수다. 의과학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운 분야가 없다”며 인체의 신비와 탐구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닥터 홍의 경우 이러한 탐구심과 호기심이 임상의가 아니라 의사이면서 과학자인 의과학자의 길로 진로를 결정한 이유가 됐다고 한다.
닥터 홍은 아버지가 ‘언제 개업하느냐’고 묻곤 하셨다고 회상하며 본인의 커리어에 대한 가족의 지원과 희생에 감사를 표했다.
▷삶의 균형과 감사
홍 박사는 “다섯 아이 중 첫째 때는 그나마 석박사 과정일 때라 아이의 성장 과정이 조금 기억이 나지만, 본격적인 연구로 바빠졌을 때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어린 시절 몇 년을 통째로 건너뛴 듯 사진을 통해서나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혼 후 처음 20년간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한 아내에 대한 감사도 특별하다. 육아를 도와주신 양가 부모님들과 바쁜 아빠를 이해해준 자녀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메릴랜드대 의과대학 심장학과 디렉터직을 수락하면서 커리어적인 변화를 감행한 것도 연로하신 장인 장모를 위한 면이 작용했다고 한다.
한인 특유의 끈끈한 가족적 유대감을 엿볼 수 있다. 1977년, 10세 때 미국에 온 홍 박사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자신보다 한국어 실력이 더 나은 것 같다며 가족애 또한 표현했다.
디트로이트에서 성장기를 보낸 홍 박사는 변화하고 있는 한인사회에 대해 “영화 ‘미나리'로 유명해진 정이삭 감독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인이 많다는 것이 반갑다”고 말했다.
지금은 끊겼지만 정이삭 감독과는 예일대 시절 인연이 닿았었다고 한다.
▷지구력과 정체성
홍 박사가 기억하는 정이삭 감독은 20년간 영화에 집중한 끈기 있는 사람이다. 홍 박사는 어떤 분야이건 잘하는 것과 그 일을 지속하는 ‘인내’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30년 가까이 연구에 매진해온 과학자로서, 후배 또는 청소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으로 한인이건 아니건 인종적 구분을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주변에서 ‘내가 하기를 기대하는 일’에 대한 성찰을 꼽았다.
이민 1세대의 헌신을 바탕으로 홍 박사 세대가 주로 의사, 변호사를 목표했던 것에 반해 지금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선택과 기회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정말 꾸준히 노력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 박사는 “같은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도 한국에 있는 연구원과 미국에 있는 한인 연구원의 태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며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그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투자하고 몰두하게 하는 일에 대한 자각과 이를 동력으로 하는 실천이 정체성 이슈를 극복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한인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라고 소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