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6대3으로 폐기했다. 미국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임신 초중기 낙태를 허용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임명한 대법관이 늘어나 보수와 진보 지형이 크게 역전되며 판례가 번복된 것이다. 현재 50개 주 중 23개 이상이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가운데, 연방대법원의 새 판례가 나오면서 낙태권에 대한 판단은 주의회로 넘어가게 됐다. 워싱턴 지역의 경우, DC는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버지니아는 임신 24주, 메릴랜드는 의사의 판단으로 태아가 산모의 자궁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이날 판결에 따라 약 50년간 연방 차원에서 보장됐던 여성들의 낙태 권리가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와 '생명의 권리'가 인정됐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는 가운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낙태 찬반 논쟁이 격화하면서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지지하는 후보를 선출, 입법 절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을 참패가 예상되는 중간선거의 카드로 삼겠다는 뜻이 명확한 대목이다. 연방하원 낸시 펠로시 의장(민주) 역시 대법원의 판결이 모욕적이고 여성을 실망시키는 일이자 미국인의 권리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을 겨냥해서는 "미국 여성이 어머니 세대보다 자유가 줄었다"며 "급진적 공화당이 건강의 자유를 범죄화하기 위해 십자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을 따른 것이자 오래 전에 했어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에 대해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권리가 아니라고 결정하면서 주별로 낙태 문제와 관련한 입법과 정책 시행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응한 행정명령을 발동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는 낙태약 구매를 용이하게 하거나 다른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치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USA투데이-서폭대학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 연방대법원의 로 앤 웨이드 판결 번복을 반대하는 여론이 61%로, 찬성 여론 28%의 두배가 넘었다. 응답자의 58%는 가족과 친구 중 낙태를 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낙태 논란이 선거에 큰 영향을 주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연방대법원의 새로운 낙태 판결이 11월 중간선거에 참여 여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낙태 판결에 자극받아 투표하지 않던 사람이 일부러 투표장을 찾는 비율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24일 워싱턴 연방 대법원 앞은 찬반 시위가 격렬히 진행됐다. 실망한 여성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법원의 결정을 성토했다. 당국은 폭력사태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진압 경찰부대를 투입하는 등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