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으로부터 ‘올해의 최고 초등학교 교사상’을 수상한 한인 교사 에셀 염(미국명 에셀 린튼)씨가 본보를 찾았다. 염 씨는 미국으로 이민 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본보를 방문한 에셀 염씨
페어팩스 카운티 애난데일 테라스 초등학교에서 17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한 염 교사는 “애난데일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많은데, 나의 이민 이야기가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염 씨 역시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1.5세였다. 그녀는 “당시 페어팩스 음악 교육과정에 리코더와 실로폰이 포함돼 있었어요. 마침 제가 리코더를 불 줄 알아서 음악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회상한다. “6학년 때는 한복을 입고 실로폰을 연주했는데, 부모님도 뿌듯해 하시고 매우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며 “음악은 순간적으로 행복감을 주는 기억을 만들어준다. 내가 이런 순간을 많이 경험해서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순간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와함께 염 씨는 “고등학교 때 1년 정도 버지니아 블랙스버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동생과 나, 그리고 두명의 친구 외에는 모두 백인 학생이었다. 내 피아노 연주를 눈 여겨 본 밴드 선생님이 재즈 밴드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고, 전자 베이스 기타를 치게 됐는데, 덕분에 ‘인싸’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음악으로 인해 활동적이고 인정받는 아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고, 인종차별 같은 건 겪을 겨를도 없었다”라며 음악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영어를 갓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장애 학생들, 자폐를 앓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다방면에서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맞춤형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염 교사에게서 학생들에 대한 열정, 사랑, 그리고 사명감이 느껴졌다. 그런 사명감은 같은 학교에서 17년을 근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염 씨는 다문화 도시인 애난데일서 교사로 겪는 기쁨과 애환도 담담히 털어놨다. 염 씨는 “사실 요즘은 같은 학교에서 17년씩 가르치는 교사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은퇴할 때까지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같은 학교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다 보면 초등학생일 때 가르쳤던 학생이 대학생이 돼서 찾아오기도 한다. 알다시피 히스패닉 가정에는 자녀들이 많다. 형제가 4명이면 모든 형제들이 저에게 음악을 배우기도 하는데, 저는 이런 것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4명의 히스패닉 학생을 가르치는데 한 학생이 영어를 상대적으로 잘 해서 그 아이가 영어와 스패니쉬 통역을 해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말만 할 줄 알고 ABC를 읽을 줄 몰랐다. 음계를 배우려면 먼저 ABC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음악 대신 영어를 먼저 가르쳐야 했다"고도 이야기 했다. 염 씨는 이런 모든 경험을 자신의 책 “음악 교사가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Music educators guide to engaging English learners)”에 담았다고 전했다.
교실에서 포즈를 취한 에셀 염 교사. < Fairfax County Public Schools/Karen Bolt>
한편, 염 씨는 음악적 재능을 살리고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 덕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행복을 느낀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열린 자세로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목공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도넛가게에서 일하셔서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피아노를 기꺼이 사 주셨고 피아노 레슨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음악 교육에 헌신적이셨는데, 아버지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풍요롭진 않았지만, 음악 교육 덕분에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에셀 염 씨는 오스틴 피 국립 대학(Austin Pea State University)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음악 교육을 전공한 이후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염 씨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학생들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관심으로 올해 페어팩스 카운티 ‘최고 교사상’을 수상했다. 그는 “올해가 아버지가 칠순이 되는 해라 상을 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었다”며 “모든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의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아들과 딸에게 교육자이자 롤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슬하에 11살 아들과 6살 딸을 두고 있는 염 씨는 딸에게 음악적 소질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딸과 차 안에서 케이팝 노래를 함께 듣고 부르는 것을 무척 즐긴다고 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블랙핑크와 아이유예요. 저희는 싸이 노래도 자주 들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케이팝이 워낙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작년에는 학교에서 BTS의 “Permission to dance”를 학생들과 연주하기도 했다. “남편 쪽 식구들에게는 음악적 재능이 하나도 없어요. 가족 연주회를 하고 싶어도 남편은 절대로 참여하지 않습니다”라며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