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토벤의 운명교향곡
강필원
고등학교 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고전음악을 즐기던 내가 서울공대 3학년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밤 동화백화점(그 당시 이름) 5층 강당에서 작곡가 나운영씨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해설하는 강의가 있다고 하여 참석했다.
그날 처음으로 고전음악 교향곡의 형식(1악장은 Sonata 형식, 2악장은 변주곡, 3악장은 Minuet and Trio, 4악장은 Rondo로 구성)에 대해서 배웠다. 주제(theme)라고 부르는 짧은 멜로디들을 정해놓고 이들을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면서 하나의 악장이 만들어진다는것을 배웠는데, 음악의 형식을 처음 배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며 감동이였다. (여기서 고전음악이란 Haydn과 Mozart 의 classic period뿐 아니라 베토벤으로 시작된 Romantic period까지 포한힌 넓은 의미로 사용됨)
나는 거의 70년 전 그날을 기준으로 단순히 음악을 즐기는 사람으로부터 음악을 배우며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 같다.
그 후에 많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느낀바는 고전음악의 명곡들은 들으면 들을 수록 더욱 아름답게 들리고, 그 조직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감동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강연에서 나운영 교수가 수많은 고전음악 중에서 왜 하필이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제부터는 간단히 “5번” 이라고 부르겠음)을 선택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한사람을 뽑으라면 언제나 베토벤이 나온다. 그러나 베토벤의 어느 음악이 최고냐고 물으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오늘 나에게 고전음악의 감동을 처음으로 안겨준 “5번”, 교향곡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5번, 그리고 New York Philharmonic의 지휘자이며 베토벤 해설가로도 유명한 Leonard Bernstein이 the world’s greatest이며 perfect music이라고 규정한 5번에 대하여 내가 배우고 느낀 바를 적어본다.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여러가지 감정들, 예를들면, 즐거움(6번 전원), 슬픔(3번과 7번의 장송곡), 고통(3번과 5번), 환희(9번 합창곡), 그리고 사랑의 기쁨(Romance in F-major) 등을 모두 최고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표현한 천재였다.
그의 감정 표현의 아름다움은 다른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교향곡을 쓰기 시작한 1800 초기부터 1900년까지 19세기의 80~90년간을 음악역사의 Romanic Period 라고 부르게 되었다.
5번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1악장의 제 1주제다. 베토벤이 이 교향곡을 짓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의 청각이 많이 손상되어 귀머거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베토벤은 1악장 1주제에 대해 자기친구에게 “운명이 이렇게 니의 문을 두드렸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Haydn과 Mozart 시대에 만들어 놓은 교향곡 형식의 중요한 부분인 introduction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제1주제로 교향곡을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혁명적 작곡방법의 하나다. “운명이 예고 없이 닥쳐 왔는데 무슨 서론이 필요 하겠는가” 라고 베토벤이 생각했을지 모른다.
Sonata 형식인 1악장의 재현부에 갑짜기 튀어 나오는 처량하고도 아름다운 oboe의 cadenza는 형식에는 맞지 않지만 듣는 이에게는 놀라운 감격을 안겨준다.
5번 2악장에서 천천히 흘러 나오는 주제와 그를 장식하는 변주곡들은 1악장의 고통을 달래고 위로받으며 기도하는 “아름다운 위로의 melody”라고 부르고 싶다.
3악장에서 베토벤은 Haydn과 Mozart 등 선배들의 규범인 Minuet and Trio을 또 다시 거부하고 훨씬 빠른 속도의 새로운 형식 Scherzo and Trio를 만들었다.
Trio 부분에서 cello와 base의 깊은 저음의 합주가 1악장에 나왔던 운명의 공포를 상기시킨 후 orchestra 소리가 조용히 사라지더니 다시금 crescendo로 커지면서 마침내 4악장의 1 주제인 승리와 희망의 C-major melody가 터져 나온다.
마치 폭풍우가 그친 후 갈라지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찬란한 햇빛 처럼. 베토벤은 암흑과 고통에서 승리와 희망으로 가는 장면을 갈라놓기가 싫어서, 3악장괴 4악장을 연결시켜 놓았다. 고집쟁이 베토벤이 또 다시 전통을 위반한 것이다.
4악장에서 베토벤은 역사상 전무 후무하게 많은 4개의 주제를 사용했으며 고전음악의 전통인 rondo대신 sonata 형식을 택했는데 내가 그 이유를 알겠다.
Rondo 형식에서는 주제 하나를 여려가지로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법인데 너무 많은 4개의 주제를 가지고는 rondo를 만들기가 불편했고, 베도벤은 4개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기가 싫었나보다.
작곡가가 귀머거리가 되어가는 절망과 어두움 속에서 승리와 용기를 표현한 4악장은 격렬하고도 장엄한 coda의 화음으로 끝을 맺는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우리들, 5번 2악장의 위로를 받으면서 천재 베토벤이 200여년 전에 세상에 뿌려놓은 에술의 향기에 흠뻑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